[기고/남도방송] 요즘은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보거나 듣기가 두렵다. 매일매일 터져 나오는 교육계의 부정과 비리의 기사를 읽다보면 스스로의 자괴감까지 느껴져 아픈 마음은 달래기가 힘들다.

20대 말에서 40대 중반까지 18년 동안을 교직에 몸담고 새파란 학생들에게 젊음을 바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왜 교육계의 비리는 근절되지 못하느냐의 질문이 자신까지 부끄럽게 만들어준다.

두 차례 해직되어 5년의 공백이 있기에, 교직을 시작하여 그만둘 때까지는 18년, 실제로는 13년의 세월을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이 있다.

근무하는 학교에서 환경이나 조건이 더 나은 학교로 옮기기 위해서도 뇌물을 바쳐야하고, 교사에서 교감이나 장학사가 되기 위해서도, 교감이나 장학사에서 교장이나 장학관이 되기 위해서도 뇌물을 바쳐야만 한다면, 그런 교육계가 어떻게 참다운 교육으로 조국의 미래를 짊어진 학생들을 교육하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가장 올바른 양심과 도덕성을 구비하여 뛰어난 지식으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할 교육자들이, 시작부터 뇌물을 통한 전보나 승진이 가능하다면, 일단 그런 교육계를 그대로 두고는 나라는 올바로 굴러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아직도 매관매직의 세상이라니!

최소한 교육계와 법조계는 썩지 않아야 희망이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부란'(腐爛)이라는 단어가 있다. 썩고 부패한다는 '썩을 부'라는 글자와 '문드러질 란'이라는 두 글자가 합해진 단어이니, 글자 그대로 '썩어문드러지다'라는 뜻의 단어다. '부'는 겉으로 썩은 것이지만, '란'은 속에까지 썩어 들어가 통째로 썩은 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실학자 정약용이 자주 사용했던 단어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당시 자기가 살아가던 18~19세기의 그때를 '부란'한 세상이라고 규정하고, 법과 제도 및 온갖 습속을 바꾸고 고치는 개혁을 통해 부란한 세상을 통째로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면서,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담은 수많은 저서를 유배지에서 저술하였다.

그런 저술이 바로 『경세유표』요 『목민심서』 및 『흠흠신서』였다. 그런 저작이 완성된지 200여 년, 아직도 그런 부란한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인가.

물욕과 색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인간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세상인들 부패가 없을 수는 없었다. 세상은 언제나 썩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그래도 한오라기의 희망이 있는 세상이라면, 최소한 교육계와 법조계, 두 영역만은 썩지 않아야만 희망이 있는 나라다. 세상과 나라의 주인공인 사람을 교육하는 교육계가 부패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런 나라는 정말로 희망이 없는 나라다.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가 자녀의 성적을 높이려고 시험답안지를 조작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제 교육계도 막장에 이르렀구나 여겼는데, 몇십명의 교육계 지도자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승진되고 전보되었다는 뉴스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에서 교육계를 정화할 수 있는 선택을

사회 전체의 양극화가 두드러지면서, 있는 집안의 자녀와 없는 집안의 자녀들의 성적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 교육자들이라도 제대로 서서 올바르고 정당한 방법으로 교육시키는 일도 힘든데, 부란한 교육자들이 어떻게 교단에 서서 바르고 정당한 교육을 시킬 수 있겠는가. 이제 바야흐로 교육자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는 선거의 계절도 다가온다.

모두가 교육계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교육감·교육위원에 출마한다는 보도들이 줄 잇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을 선출해야 교육계가 정화될 것인지, 우리 모든 유권자들이 똑바로 눈을 뜨고 제대로 파악하여 훌륭한 선택을 하는 것만이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법과 제도를 고치고 바꾸는 일도 병행해야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참으로 답답하다.

모두가 자신이 최고의 적격자이고 가장 훌륭한 교육자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마음에 맞는 후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요즘 서울시교육청의 온갖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한, 정말로 나라는 망하고 말리라는 다산의 탄식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선거의 공정성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주지도 받지도 말고, 참으로 옳고 바른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는 일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교육계를 정화할 수 있는 국민적 힘이 발휘되기만 바라고 빈다.

글쓴이 / 박석무
· 다산연구소 이사장
·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 성균관대학교 석좌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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