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자 주철희 박사가 본 진상보고서 시선]
"조사기획단 전문가 없어··· 전남지사 책임 막중"
"시민단체·유족회·정치권·전남도 머리를 맞대야"

▲역사연구자 주철희 박사
▲역사연구자 주철희 박사

[여수/남도방송] 지난 15일 여순사건 중앙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진상조사기획단 단원을 구성했다는 게 외부로 알려졌다. 기획단은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기구다. 기획단은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작업을 담당한다.

기획단은 15명 이내 단원으로 구성한다. 단원은 당연직으로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법제처, 전남도 5명과 위촉직으로 유족 1명, 법률가 2명, 학계 3명, 전문가 4명 등 10명으로 구성했다.

총 15명의 단원 중 단장은 허만호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임명됐다. 단원 중 당연직은 정부 행정기관에서 참여한 것이기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위촉직 10명이다. 위촉직 중 유족대표(이형용 여순사건 전국유족총연합회 대변인)를 제외한 9명이 이른바 여순사건 전문가로 위촉된 것이다.

여순특별법 시행령 제13조⑤항4 '여수·순천 10·19사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중에서 위원장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정한다는 법령에 준하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즉 위촉직 9명 중 법률가 2명, 학계 3명, 전문가 4명 면면을 따져봐야 이들이 여순사건 전문가인지 확인할 수 있다.

◇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누구인가?

우선 위촉직 면면을 따져보기 전에 시행령에서 말하는 '여수·순천 10·19사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전문가'라고 한다.

여순사건 전문가란 여순사건과 관련 학위를 받았거나 논문을 발표했거나 활동을 지속해 한 사람을 일반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위촉직 9명이 여순사건과 관련한 학위가 있는지, 발표한 논문이 있는지, 여순사건 관련 활동을 얼마나 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째 법률가로 위촉된 정재기, 김계리 변호사는 모두 여순사건 관련 및 그 유사한 활동을 전혀 볼 수 없다. 예컨대 민간인 학살의 재판, 과거사 및 국가범죄와 관련 재판 등도 없으며 그러한 단체에서 활동도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학계는 허만호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사회과학처장 등이다. 이들은 대체로 보수적 성향의 뉴라이트와 연관성이 있으며 북한문제, 대북정책, 통일정책, 한국전쟁에서 육군의 재편 등을 연구했다. 하물며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육사 교정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전문가 그룹으로 이미숙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양영조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남정옥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김형석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등 4명이 위촉됐다. 군사(軍史)를 연구한 사람이 3명이나 된다. 여순사건 진상보고서를 쓴다는 것인지 군사를 쓴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여순사건특별법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회복을 통해 민주 발전과 국민 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위촉직 9명은 우익적 성향이 강하며, 하물며 뉴라이트에서 활동했던 사람도 있다. 이들은 특별법 목적인 국민화합과는 전혀 다르게 '이념'의 반목과 갈등이 재현될 것이 뻔하다. 70여년 동안 왜곡 조작됐던 '반란', '빨갱이' 악몽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 총의를 모으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관련 연구자가 한 명도 없는 기막힌 현실에 윤석열 정부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까지 도달하게 된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기조가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지역사회 무관심, 정치권 안일함, 유족회 무능력, 전남지사 무책임과 방관이 이러한 사태를 불러왔다.

특히 전남지사 책임은 막중하다. 도지사는 실무위원회 위원장이면서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중앙위원장(국무총리)이 기획단 단원을 위촉하지만, 위원회는 협의체 기구로서 위원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던 도지사는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단원이 구성됐는데도 어떤 목소리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쪽으로 치우쳐진 편향적인 기획단 단원들은 또 다른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며 '반란', '빨갱이' 악몽을 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순사건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는 작금 상황에서 진상조사보고서는 그동안 지역사회가 펼친 여순사건 진실규명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지금이라도 시민단체, 유족회, 정치권, 전남도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온 이후 한탄과 분노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막아야 한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어떠한 행동을 해서라도 기획단 단원 교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향후 대책과 대안도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한다.

<역사연구자 주철희 박사>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남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