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칼럼] 옛날 조선시대에는 도지사를 관찰사라 불렀고, 요즘의 도청을 감영(監營)이라 불렀습니다. 관찰사 아래 군수나 현감인 목민관이 있었기 때문에 감영에서 내리는 지시는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수령(守令)의 처지였습니다.

정당하고 올바른 지시야 의당 따르고 봉행해야 하지만, 범령이나 사리에 어긋나는 하명에 어떻게 할것이냐가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런 점에 대하여 다산은 명확한 견해를 밝히고 자신이 수령으로 있을 때 직접 행동으로 보였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목민심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1798년 겨울에 조세의 현물 수납을 이미 절반이나 끝냈는데, 상부관청인 선혜청에서 공문서를 보내 좁쌀 7천석을 현금으로 납부하라고 독촉하였다. 그것은 본래 서울의 선혜청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허락을 얻어서 공문을 보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고집하여 그대로 현물를 수납하고 창고를 봉하였다.

서울의 선혜청에서 나를 죄줄 것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황해감사가 올린 자세한 장계( 狀啓 )를 보고는 ‘잘못은 선혜청에 있고 정약용은 죄가 없다’라고 하였다. 사표를 내고 돌아가려다가 마침 정부의 소식을 듣고 눌러앉았다.” (목민심서.공납)라고 기록했습니다.

부당한 상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알던 곡산 도호부사 정약용의 훌륭한 처신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이런 경험이 있던 다산은 “윗 관청에서 이치에 어긋난 일을 고을에 배정하면 수령은 마땅히 이해(利害)를 두루 개진하여 봉행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원칙을 제시하고, “이치에 맞지 않아 받들어 행할 수 없는 것이면, 사리를 낱낱이 보고하되, 그래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때문에 파직을 당할지라도 굴해서는 안된다.”라고 『목민심서』에서 천명하였습니다.

상급관청으로서야 아무리 편한 일이지만, 이익과 손해가 백성들에게 관계되는 일이라면, 당해 고을의 수령은 백성들에게 불편하거나 손해가 되는 일에는 강력히 항의하여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니, 다산의 생각이 얼마나 바르고 훌륭합니까.

요즘 세상과 비교해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가슴을 조이게 합니다. 사리에도 어긋나고 이치에도 맞지 않은 일이지만 상급관청에서 지시하면 이해득실을 따져 조목조목 따지지 못하고 그냥 맹종하는 경우가 많다면 얼마나 따분한 일인가요.‘공납’(貢納) 조항에는 옛날 어진 수령들이 부당한 지시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백성들이 편하고 이익이 되게 했던 사례가 많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공직자들도 그런 내용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면 어떨까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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