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과정서 강압‧회유‧기만 등 온갖 불법 자행"
재심 변호사 "약자가 수사 표적··· 실적 수단 이용"
당시 차장검사 김회재 "실체적 진실 밝히려 최선"

▲피고인 백씨 심문 영상 (박준영 변호사 제공)
▲피고인 백씨 심문 영상 (사진=박준영 변호사)

[순천/남도방송] 전남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과 관련 12년 전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를 받은 부녀가 재심 개시 절차에 돌입하면서 검찰의 짜맞추기 강압수사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 재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당사자들은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며 발달장애 경계선에 있는 이들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데 수사 표적이 됐다"면서 "실적을 위해 사람을 이용한 '실적의 수단화'로 이용됐다"고 비판했다. 

앞서 4일 광주고법 형사2-2부는 2009년 전남 순천 황전면에서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최모(당시 59세)씨와 정모(당시 68세)씨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 등)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던 백모(73)씨와 딸(39)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검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주장과 초동수사 당시 수집된 화물차 관련 CCTV 자료가 새로 발견돼 무죄의 명백한 증거라는 주장을 받아들여 재심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2009년 7월 6일 오전 벌어졌다. 백씨 부녀는 순천시 자택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씨에게 건넸으며, 막걸리를 건네받아 마신 최씨와 정씨 등 2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으나 검찰은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백씨와 딸에게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2년 3월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백씨 부녀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지 10년 만인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 2년 만에 이들의 재심이 인용됐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의 수사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백씨 부녀는 지난 4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당시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검사와 수사관의 강압, 회유, 기만 등 온갖 불법이 자행된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검찰은 허위 자백 강요 등은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재판부는 재심 요구를 받아들였다. 

핵심 증거로 제시된 청산가리가 막걸리에서는 검출됐으나 사건 현장 등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청산가리를 넣었다던 플라스틱 숟가락에서도 성분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검사가 생각을 주입해 유도신문 하는 등 위법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다"며 "경찰이 초동수사 당시 수집한 화물차 CCTV 증거와 진술도 배치돼 기존 판결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검사가 대법원 재심 결정에 불복하지 않으면 재심이 확정되며, 이럴 경우 사건을 맡은 검사의 불법 수사가 드러난 셈이지만 담당 검사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100편에 달하는 검찰 진술 녹화 영상 편집본을 증거로 제시하며 "당시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검사와 수사관의 강압, 회유, 기만, 이간질 이런 온갖 불법이 다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사용하는지 농업인들을 상대로 한 진술도 상당히 많았지만, 의미 있는 수사 결과가 백씨 부녀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누락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심을 통해 공권력의 잔인성을 최대한 드러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차장검사 신분으로 사건 수사를 지휘한 김회재 국회의원(여수을)은 전날 여수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시 신중히 (수사)하려고 부장검사까지 투입시켜 공판에 관여했다"며 "검찰 입장에선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 최선을 다했다"고 반박했다.

조승화 기자 frine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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